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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서 노화한다는 것

캐시테이커 2025. 6. 26. 23:51

현대는 디지털이 지배하는 시대이다. AI 돌봄 서비스, 비대면 행정, 키오스크 결제, 모바일 헬스케어, 챗봇 민원 시스템 등 모든 것이 스마트폰과 인터넷 중심으로 운영된다. 그 중심에서 우리는 묻는다. 이 디지털 사회에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최근 검색량이 높은 키워드인 AI 감성친구, 슬로우에이징 식단, 디지털 접근성, 노인 맞춤형 키오스크 등의 등장은 기술과 노화의 교차점을 시사한다. 하지만 이 모든 기술적 진보는 노년층에게는 종종 장벽이 되는데, 그렇다면 기술 적응의 어려움, 세대 간 디지털 격차, 노인의 사회적 소외,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대안은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자.

 

디지털 시대에서 노화한다는 것
디지털 시대에서 노화한다는 것

 

1. 노인층의 기술 적응, 왜 어려운가?

노년층은 기술에 대한 생물학적, 문화적, 교육적 불균형으로 인해 디지털 환경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체적으로 시력 저하, 손의 근육 감각 둔화, 기억력 저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터치스크린 기기를 사용하는 데도 불편을 느낀다. 문화적으로는 인터넷 사용이 일상화되기 이전 세대이기에 스마트폰, 앱 설치, QR코드 인식 등의 행동이 낯설다.

무엇보다 교육적 기반이 취약하다. 디지털 교육을 받을 기회 자체가 제한되어 있으며, 있어도 일회성 프로그램이 대부분이다. 또한 많은 노인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 기기 고장에 대한 걱정, 괜히 누르면 망가질까 봐라는 불안 때문에 기기를 적극적으로 다루지 못한다. 기술은 점점 고도화되지만 그 기술의 대상은 젊은 세대에 맞춰져 있어 노인을 위한 사용자 경험은 고려되지 않는다.

2023년 정부 통계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 고령층의 절반 이상이 스마트폰은 보유하고 있지만, 이 중 상당수가 기능의 20% 이상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 같은 디지털 활용 격차는 단순한 기술 사용 능력의 차이를 넘어서, 정보 접근과 일상 기능 수행의 권리를 제한하게 된다.

 

2. 젊은 세대와의 격차 단절된 관계, 좁혀지지 않는 거리

디지털 기술은 세대를 구분 짓는 도구가 되었다. 젊은 세대는 디지털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났기에 그들은 자연어처럼 기술을 구사한다. 그러나 노인층은 외국어를 배우듯 기술을 익혀야 한다. 이로 인해 가족 간, 사회 간의 소통이 단절되기 쉽다.

가령, 손주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려 해도 카카오톡 사용이 익숙지 않으면 메시지를 놓치기 쉽다. 은행이나 병원 예약도 모바일 앱 기반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노인층은 실질적으로 서비스 접근이 제한된다. 젊은 세대는 이 과정을 당연하게 여기고, 노인층은 점점 위축된다. 이런 상황은 세대 간 불신과 거리감을 확대시킨다.

한 디지털 노동 환경에서는 단순히 능력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많은 공공근로, 재취업 프로그램에서도 이력서 작성, 교육 수강, 출결 관리가 온라인 기반으로 이루어지며 그에 적응하지 못하면 기회 자체가 닫힌다. 디지털 격차는 단순한 도구의 차이가 아니라 사회 참여의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곧 자존감 저하, 고립감 증가로 확장된다.

 

3. 디지털 소외와 고립 존재의 불확실성

디지털 환경에서 노인이 겪는 소외는 단순히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곧 사회적 존재감의 감소로 이어지며, 자신의 쓸모에 대한 의심으로 연결된다. 예를 들어, 무인민원발급기나 셀프 키오스크에서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운 상황은 노인에게 자존감을 훼손하는 경험이 된다. 의료, 금융, 행정 등 생활의 기본적인 서비스조차 디지털 리터러시 없이는 사용할 수 없다는 현실은 노인을 이중삼중으로 소외시킨다.

특히 독거노인의 경우, 디지털 고립은 곧 정서적 고립이다. 타인과 연락이 끊기고,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지 못하며, 병원 진료와 약 처방 등에서도 필요한 정보를 제때 얻지 못해 건강 상태가 악화되기도 한다. 이는 곧 사회적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처럼 기술을 접하지 못한다는 것은 단지 불편함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상태로 몰리는 사회적 위기다. 기술은 노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지워버리는 방식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4. 대안 기술을 사람에게 맞추는 사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인의 기술 적응을 개인의 능력 문제로 돌리는 접근을 넘어서야 한다. 구조적, 문화적, 정책적 해법이 병행되어야 하며, 아래와 같은 대안이 필요하다.

 

1) 첫째, 맞춤형 디지털 교육의 정규화와 지속성 확보 노인을 위한 디지털 교육은 일회성이 아닌 지속 가능한 프로그램으로 설계되어야 하며, 반복학습과 체험 중심의 접근이 요구된다. 글자 크기 확대, 음성 인식 기능 활용, 휴대폰 사용법, 공공앱 (질병관리청, 정부24 등) 활용법 등 실생활 중심의 커리큘럼이 필요하다.

 

2) 둘째, 노인 친화형 기술과 기기 개발 키오스크는 글자 크기 조정, 안내 음성 제공, 화면 단순화 등 노인 전용 모드를 기본 탑재해야 하며, 은행·병원 등에서는 반드시 대면 지원 인력을 함께 배치해야 한다. AI 감성돌봄 로봇이나 디지털 감시 시스템도 단지 효율성이 아닌 인격적 상호작용이 가능해야 하며, 인간 존엄성과 프라이버시를 최우선으로 고려한 설계가 필요하다.

 

3) 셋째, 세대 간 연결을 위한 디지털 동행 사업 청년 세대와 노인을 연결하는 디지털 동행 멘토링을 제도화할 수 있다. 손주가 조부모에게 스마트폰을 가르치는 활동을 사회봉사 학점으로 인정하거나, 지역 커뮤니티 내에서 상호 교육 활동을 장려하는 방식도 있다. 세대 간의 기술 교류는 관계 회복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

 

4) 넷째, 제도적 안전망 강화 정부는 노인의 정보 접근권을 법적으로 명시하고, 디지털 접근이 어려운 노인을 위한 오프라인 민원 창구, 전화상담, 직접 방문 서비스 등을 유지해야 한다. 디지털 접근성 보장법과 같은 입법을 통해 노인의 권리를 체계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

 

 

디지털 시대에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단순히 세월의 흐름이 아니라, 기술 중심 사회에서 점점 투명해지는 존재가 되는 위험을 뜻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흐름에 순응하는 대신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기술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노인을 위한 사회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에 있는 사회다. 디지털은 도구이지 삶의 본질이 아니다. 그렇기에 기술은 가장 느린 속도의 사람도 함께 걸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우리는 기술의 발전보다 더 빠르게, 인간을 향한 배려의 감수성을 확장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이 들어도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노화란 멈춤이 아니라, 적응의 또 다른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