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와 자기 정체성에 대하여 나는 여전히 나인가?
노화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생물학적 과정이자, 사회문화적으로도 깊은 의미를 가진 인간 경험이다. 최근 사람들은 슬로우 에이징, MIND 다이어트, 레드진생, PDRN(연어DNA), 레티놀 대체 성분 같은 키워드로 노화의 속도를 늦추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질문은 이렇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나는 여전히 나인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의 외모는 바뀌고, 사회적 역할은 전환되며, 체력과 감각도 예전 같지 않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라는 존재는 계속 유지되는가? 라는 그 질문에 대한 철학적, 심리적, 문화적 성찰을 해보자.
1. 외모 변화와 나 사이의 간극
거울 앞에 선 우리는 어느 순간 낯선 인물을 마주하게 된다. 젊은 시절 사진 속의 나는 이미 과거이고, 현재의 나는 이전과는 다른 주름진 얼굴, 늘어진 피부, 하얗게 센 머리칼을 가지고 있다. 화장품이나 미용 시술, 혹은 PDRN과 같은 고기능성 성분으로 이러한 변화의 속도를 늦추려 애쓰지만 본질적인 질문은 해결되지 않는다. 과연 나는 외모가 달라졌다고 해서 내가 아닌 나가 되는 것일까?
철학자 하이데거는 우리 존재가 던져짐 속에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주어진 조건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며, 그 조건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구성해 나간다. 외모는 그 조건 중 하나일 뿐 나의 정체성을 온전히 규정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외모 변화는 어쩌면 존재의 시간성 즉 내가 살아온 흔적이 외부로 드러나는 방식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외모의 변화는 나를 부정하는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나의 삶을 증명하는 증표로 바라볼 수 있다.
2. 역할 변화 속에서 재정의되는 나
노화는 단지 신체의 노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삶의 무대에서 우리가 맡았던 역할들이 하나둘 사라지거나 변형되기 시작한다. 직장에서 은퇴를 맞고, 부모로서의 역할이 축소되며, 때로는 친구와 배우자와의 관계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이러한 변화는 때로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오기도 한다.
이제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 앞에서 우리는 불안해진다. 하지만 심리철학자 존 로크는 정체성을 기억의 연속성에서 찾는다. 내가 어떤 경험을 했고 그 경험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가 곧 나라는 존재의 핵심이다. 즉, 역할이 변해도 나의 의식이 연결되어 있다면 나는 여전히 나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에서도 말년기의 핵심 과제는 통합이다.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고 수용하며, 삶의 의미를 긍정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성공적으로 늙어간다. 다시 말해, 역할이 바뀌더라도 그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 변화조차 나의 일부로 통합될 수 있는 것이다.
3. 노화는 멈춤이 아니라 성숙의 다른 이름
오늘날 한국 사회는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잘 늙는 법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단순히 노화를 막는 것이 아닌 노화를 관리하고 수용하는 슬로우 에이징, 웰 에이징의 개념이 확산되고 있다.
예를 들어 뇌 건강과 인지 기능 유지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진 MIND 다이어트는 식습관을 통한 노화 대응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레드 진생, 발효식품, 식이섬유 섭취 등은 면역력 강화와 장 건강 유지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이 모든 노력은 신체적인 노화를 다루기 위한 실천이지만 그 근저에는 삶을 계속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의지가 깔려 있다. 철학자 마르셀은 존재한다는 것은 관계한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우리가 관계 맺는 방식, 삶을 바라보는 태도, 감정에 반응하는 깊이 등이 성숙해지는 것을 감안하면, 노화는 단순한 쇠퇴가 아닌 또 다른 성숙의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노화는 멈춤이 아니라 성숙의 다른 이름이다.
4. 정체성은 무엇으로 유지되는가
그렇다면 외모도 변하고 역할도 바뀌며 신체 기능도 달라졌을 때, 무엇이 나를 나이게 하는가? 그 핵심은 자기 인식과 기억, 그리고 자기 서사에 있다. 인간은 단순한 생물학적 존재가 아니라 자신을 서술하고 해석할 수 있는 존재다.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퐁티는 신체적 경험이 정체성을 구성한다고 보았다. 우리는 세계를 지각하고 몸으로 경험하며 그 경험을 기억하고 해석함으로써 자아를 형성한다. 즉, 늙어가는 몸은 변질된 나가 아니라 깊어진 나다.
노화는 자아 서사에 새로운 장을 추가한다. 지금껏 살아온 나의 이야기에 더 깊은 문장, 더 진한 색채, 더 복합적인 감정이 쌓여가는 것이다. 우리가 자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은 변화하지 않음이 아니라 변화를 품는 해석의 힘이다.
그렇다면 결국 나는 여전히 나인가? 라는 물음은 단지 외모의 변화나 역할의 이동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외모가 변해도, 역할이 달라져도, 우리가 스스로를 기억하고 이야기하며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여전히 그 나를 살아가고 있다. 노화는 끝이 아니다. 새로운 시작이다. 늙어간다는 것은, 내가 나로서 더 깊어지고 넓어지는 과정이다. 이제는 그 흐름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넘어,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정체성은 과거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 속에서도 자신을 잇는 능력이다. 그리고 그 연결의 끝에는 분명히 지금 이 순간의 나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