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갈수록 예전에는 친구가 많았는데 요즘은 만날 사람도 줄었네 라는 말을 자주 하거나 듣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신체적 제약이나 경제적 이유 때문만이라 할 수 없다.
오히려 인생의 단계가 변하면서 우리가 사람과 맺는 방식과 기대하는 관계의 깊이와 의미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면서 인생 후반기에 접어들수록 우선순위와 삶의 목표가 바뀌고, 이에 따라 관계망이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화가 진행될수록 인간관계가 축소되면서 친구가 줄어드는 현상이 생기는 심리·사회적 배경이 무엇인지 체계적으로 살펴보고 관계 축소와 고립감을 극복하기 위한 실질적 대처법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1. 심리적 요인은 깊이 있는 관계를 우선하는 경향
노화가 진행되면 단순히 친구 수가 줄어드는 것으로 보이지만, 심리적으로는 의미 있는 관계에 집중하는 변화일 수 있다.
미국 노화심리학자 로라 카스텐센은 시간지평선 이론에서 “인간은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제한적이라고 느낄 때, 새로운 관계보다는 이제까지 맺어온 관계 중 정서적 유대가 큰 사람에게 집중하게 된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50대 이상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새로운 인맥을 넓히기보다는 오래된 친구나 가족과의 심리적 관계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는 결코 소극적 변화가 아닌 적극적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삶의 에너지나 시간이 한정적이라는 자각은 관계의 수를 줄이고, 그 자원을 정서적으로 안전하고 의미 있는 관계에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2. 사회적 요인은 상실 경험과 환경의 제약
나이가 들면서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상실과 사회 변화도 관계망 축소의 주요 원인이다.
우선, 동년배 친구들의 사망, 이혼이나 이별, 혹은 건강 악화로 인한 만남의 중단은 관계를 줄이는 물리적 요인으로 크게 작용하며 85세 이상 고령층의 경우에는 이동성 제약이 심해지면서 만날 수 있는 친구의 수가 급감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한 한국과 유럽, 북미 등에서 도시화와 핵가족화가 심화되면서 지역사회 중심 네트워크가 약화되었다. 한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던 이웃이나 마을 공동체의 붕괴는 친구를 새로 사귀거나 유지할 수 있는 기반마저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물리적으로 사회적으로 모두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인간관계는 자연스럽게 수적인 감소를 겪게 되는 것이다.
3. 축소된 관계망이 미치는 영향과 위험성
대인관계의 감소는 단순한 사회적 현상에 그치지 않는다. 외로움과 고립감이 심화되면 우울 및 불안 장애 위험이 높아지며, 인지 기능도 점차 약해진다. 한 연구에서는 사회적 관계가 적을수록 사망률이 높아지며 만성질환 발병률도 증가한다고 보고한 바 있다. 이는 음주나 흡연으로 인한 사망보다 더 큰 사망 위험요인이라는 충격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더 나아가 은퇴나 배우자 사망, 건강 문제, 이주 등 인생 전환기가 되면 정서적으로 취약해지는데 이 시기에 관계망이 안정적이지 않다면 심리적 충격이 더욱 크게 나타난다. 따라서 친구 수가 줄어드는 상황은 단순히 외로움을 넘어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실질적 위협이 되는 셈이다.
4. 관계망 유지와 확장을 위한 실질적 방안
1) 관심 기반 소모임 활성화
나이 들어갈수록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는 작지만 깊은 모임은 관계 유지와 확대의 효과적인 출발점이다. 독서회, 가드닝, 사진이나 음악 모임처럼 활동 중심의 소규모 모임 참여는 목적이 분명하고 인연이 오래 갈 가능성이 높다. 봉사활동도 유사 맥락에서 공동의 목적을 함께하는 경험이 되며 심리적 유대를 만들고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된다.
2) 디지털 툴 적극 활용
이동이나 신체 제약이 있는 경우 줌이나 스카이프 등과 같은 화상통화 메신저나 SNS 플랫폼이 소중한 연결망이 된다. 특히 VR이나AR 기반의 가상 모임이나 게임, 함께 듣는 음악·영화 플랫폼은 물리적 거리뿐 아니라 심리적 거리도 좁히는 역할을 한다. 예컨대 VR로 동네 카페에서처럼 대화를 나누거나 같은 책을 읽고 소감을 나누는 온라인 북클럽에 참여할 수 있다.
3) 기존 관계의 복원
오랜 기간 연락이 끊겼던 친구에게 전화나 메시지를 보내 추억을 공유하거나 동창회, 동호회 재참여를 시도해보는 것도 좋다. 이때 단순 안부 인사보다는 그간의 변화, 공감할 이야기, 옛 추억 등을 나누는 것이 관계 회복에 더 효과적이다.
4) 전문적 정서 지지 구조 접목
친구나 가족으로부터 받기 힘든 정서적 위로는 시니어 동료 상담이나 그룹 회고요법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들은 전문적 치료라기보다 서로 경험을 나누고 함께 듣는 방식으로 신뢰와 공감을 중심에 두며 노년층의 정서적 안정망 역할을 한다.
나이가 들면서 친구 수가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럽고 흔한 현상이지만 이것이 외로움으로 귀결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이제는 양보다 깊이 있는 관계에 집중할 때이며, 이는 삶의 만족도 및 웰빙에 더 큰 영향을 준다.
관계를 유지하거나 확장하려면 단순히 옛 관계를 유지하려 애쓰기보다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활동에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쌓고 물리적 제한을 디지털로 보완하면서 정서적 지원이 필요한 시기에는 전문 구조에 도움을 받는 구조도 필요하다.
관계라는 것은 만남 그 자체가 아니라 이어감이라고 했다. 우리의 삶이 길어질수록 그 관계는 더욱 귀한 것이니 오늘부터 작은 모임 하나, 전화 한 통화, 그리고 디지털 만남부터 차근히 시작해보도록 하자.